1998년, 한국 영화계에 독특한 코미디 감성을 선보인 장진 감독의 데뷔작 <기막힌 사내들>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네 명의 남자가 펼치는 엉뚱하고도 처절한 소동극을 담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연쇄 살인 사건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배경과 단 한 번도 성공해 본 적 없는 삼류 도둑들의 무력한 일상이 교차하며, '우연'과 '기적'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삶의 부조리를 풍자합니다. 킬러들의 수다, 웰컴투 동막골로 이어지는 장진 감독 특유의 엇박자 유머가 이미 이 작품에서부터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장진 감독 특유의 엇박자 유머와 비극의 교차
<기막힌 사내들>은 장진 감독이 데뷔작부터 자신만의 색깔을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입니다. 서울 시청 앞에서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김추락은 "서울의 지옥철을 해결하라"며 기름을 붓지만, 정작 돈이 모자라 경유를 산 탓에 불이 붙지 않는 코믹한 상황으로 시작됩니다. 베테랑 형사는 "경유 붓고 불붙길 바라냐? 네가 뭐 지프차냐?"라며 추락의 자살 시도조차 제대로 된 계획이 아니었음을 조롱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작 자기 삶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비극을 희극적으로 뒤집어 놓습니다.
한편 평범한 자동차 세일즈맨 8호는 국회의원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반복해서 경찰서에 끌려옵니다. 그는 단지 범행 장소를 지나갔을 뿐인데, 베테랑 형사는 국어사전을 꺼내 들며 "우연"의 의미를 따지고, 급기야 "네 번 연속 국회의원 살해 현장에 우연히 나타난다는 게 말이 되냐"며 그를 의심합니다. 파호가 매번 "억울합니다. 모함입니다"라고 외치지만, 형사는 "그렇다면 피해자는 왜 죽었지?"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립니다. 이러한 논리의 비약과 상황의 부조리함은 장진 감독 특유의 코미디 감각을 극대화시키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동시에 씁쓸함을 선사합니다.
영화는 또한 진짜 범인들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들은 "우연히 네 번 연속 국회의원을 살해하게 된" 무지렁이들로, "국회의원인지 아닌지 물어보고 하지"라는 대사에서 드러나듯 계획성 없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이들의 조직은 체계적이지도, 지능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삼류 도둑들보다 더 엉성한 모습입니다. 장진 감독은 이를 통해 거대 범죄 조직이라는 사회적 공포가 실은 매우 우연적이고 무계획적인 사건들의 연속일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제시합니다. 형사들이 "전문적 군사 훈련을 받은 북한 최정예 공작원들의 소행"이라 추측하지만, 실제 흉기는 "막일판에서 못 뽑아 쓰는" 소박한 도구였다는 점에서 권력의 허상과 현실의 격차를 날카롭게 풍자합니다.
소외된 남자들의 실패와 연대의 서사
오랜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덕배는 절친 달수와 함께 "단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는 삼류도둑 콤비"로 살아왔습니다. 그가 보육원에서 일하는 딸 화이를 찾아갔을 때, 화이는 냉담하게 말합니다. "아버지에게 앙금이 남아 있건, 무슨 약속을 했건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여기 노처녀 보육원장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애들이 학교 가는 길의 자전거를 수리해 주는 것, 오늘 저녁 반찬거리, 아픈 아이들 치료예요. 그리고 평범한 여자로서의 내 인생이 중요하다고요." 화이의 이 대사는 덕배가 아버지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듭니다. 그녀는 "아버지께서 들어올 자리가 없어요. 차라리 돈을 벌어다 기부금이라도 내세요"라며 냉정하게 선을 긋습니다.
이러한 냉대는 덕배에게 도둑질보다 더 큰 삶의 형벌로 작용합니다. 그는 달수에게 "마지막으로 크게 한탕을 치기로" 결심하고, 오목나무 아래에서 자살 시도 중이던 추락을 만나게 됩니다. 추락은 "끈 길이를 잘못 재서 이틀 동안 깡충거렸다"는 황당한 이유로 자살에 실패한 인물로, "독도를 사수하자"는 명목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정작 "바다에 떠 있는 독도를 지키는 놈이 첩첩산중에 들어와서 목을 맨다"는 달수의 지적처럼 논리적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추락은 덕배와 달수에게 "날 죽여라. 당신들이 날 살렸으니 끝까지 책임지라"며 범행에 끼워 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렇게 우연히 모인 네 사람은 각자의 실패와 좌절을 안고 "최고의 한탕"을 계획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범행 계획은 번번이 실패합니다. 골목길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시도할 때마다 누군가 나타나며, 급기야 트럭까지 등장합니다. "꾸준히도 지나간다"며 포기하려는 순간, 경찰차 사이렌 소리에 네 사람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은 이들이 얼마나 죄의식과 두려움 속에 살아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경찰에 붙잡힌 이들은 "육사 졸업식도 아니고 화려하구먼"이라는 베테랑 형사의 조롱을 듣습니다. 형사는 이들을 연쇄 살인범 조직으로 오해하고, 덕배는 "보민학교 4학년 때 분단장 한 번 해 본 게 전부"라며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믿어주지 않습니다. 장진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권력의 시선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폭력적인지, 그리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쉽게 묵살되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페이소스와 부조리,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자존감 회복
영화의 백미는 화이가 경찰서로 찾아와 "우리 아버지 풀어 주세요"라고 간청하는 장면입니다. 베테랑 형사는 "묵덕대고 풀어 달라니, 이게 무슨 억지냐"며 화를 내고, 화이는 "아저씨들 지금 실수하는 거예요"라고 맞받아칩니다. 형사가 "네가 뭔데 나한테 반말해?"라며 권위를 내세우자, 화이는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나한테?"라고 되받아치며 "개새끼야"라는 욕설까지 퍼붓습니다. 이 장면은 권력 앞에서 무력한 소시민이 분노를 표출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화이 역시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다행히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네 사람의 무죄가 밝혀지고, 이들은 풀려나게 됩니다. 하지만 화이는 덕배에게 "이젠 어디서고 내가 아버지의 딸이라고 말하지 않을 거예요. 사람들은 많은 걸 아끼면서 살아가요. 집에서 키우는 개도 아끼고 난초도 아끼고, 물도 아끼고 전기도 아끼고 돈도 아끼죠. 이제 전 당신 딸이 아니에요"라며 차갑게 선을 긋습니다. 이 대사는 덕배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는 "자식이 그렇게 대수냐"며 절규하지만 결국 "이런 짓 그만하자"라고 포기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추락이 덕배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지금껏 뭐 하나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언제나 실패였고 언제나 망쳤다고요. 하지만 이젠 저도 뭔가 좀 해 봐야 되겠습니다. 형님을 위해서, 형님 자식인 화이를 위해서. 살아생전 단 한 번이라도 화이를 위해서 뭔가 해 줘야 될 거 아니요? 떳떳하게 큰소리치며 그 애 앞에 나서야 될 거 아니냐고요. 그리고 다시 아버지로 돌아가는 거예요.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최고의 한탕을 합시다"라는 추락의 말은 덕배에게 마지막 희망을 불어넣습니다. 추락은 또한 "여자가 하나 있거든요. 참 이상한 사람인데, 여하튼 이뻐요. 여자 손가락엔 예쁜 반지가 끼워져 있어요. 지금도 그 여자는 그 남자를 기다리며 늘 그렇게 있어요. 기다림은 이골이 나도 좋은 거예요. 다만 그 기다릴 것이 없어졌을 때 그때가 문제죠"라며 덕배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위로합니다. 그리고 "따님도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았어요. 그건 어쩌면 아저씨께서 그렇게 기다리려고 했던 거랑 같은 건지도 몰라요"라는 말로 덕배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줍니다.
장진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최고의 한탕'이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자존감 회복'이라는 숭고한 과제로 치환시킵니다. 네 사람은 다시 모여 계획을 세우고, 영화는 "과연 네 사람의 한탕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며 열린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이는 결과보다 과정, 성공보다 시도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장진 감독의 휴머니즘을 잘 보여줍니다.
<기막힌 사내들>은 장진 감독 특유의 엇박자 유머와 페이소스가 집약된 작품으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남자들의 무력함과 연대를 통해 삶의 부조리를 풍자합니다. "우연"과 "기적"이라는 키워드는 이들의 삶이 얼마나 우연적이고 불합리한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과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작 자기 삶조차 건사하지 못하는 소시민의 비극을 희극적으로 재현한 이 영화는, 킬러들의 수다와 웰컴투 동막골로 이어지는 장진 감독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이미 데뷔작부터 완성되어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XQBG-sOOfr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