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영화제 4개 부문 수상작 《스틸 라이프》는 고독사한 이들의 마지막을 책임지는 장례지도사 존 메이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외면해 온 죽음과 삶의 의미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정물화처럼 묵직한 존재감을 지닌 이 작품은, 2026년 개인화된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이웃'과 '마지막 배려'에 대한 가장 따뜻한 질문을 던집니다.

존 메이, 잊혀진 이들의 마지막을 기억하는 남자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장례식장을 돌아다니며 홀로 장례를 치르는 남자 존 메이. 고인의 유골을 받아 공원에 뿌리는 그의 직업은 쓸쓸히 고독사한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장례지도사입니다. 곧이어 사무실로 돌아온 메이는 장례를 끝낸 사람들의 서류를 정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고독사 노인에 대한 신고를 받고 고인의 집을 방문한 그는 유품들을 살펴보며 가족이나 지인에 대한 단서를 찾는데, 겨우 연락이 닿아도 사람들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차갑고 무덤덤한 대답만 되돌아올 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친구도 없이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메이. 그 역시도 사람들에게 잊힌 고인들처럼 외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런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자신이 모셨던 고인들의 사진을 보며 그들과 유대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고인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메이는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통해 고인의 삶을 세심히 돌아보는 추도문을 작성합니다. 하지만 메이의 목소리만이 텅 빈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뿐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초라한 묘지 앞에서 메이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고, 잠시 동안 묘에 누워 고인들을 마음으로 느껴보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헌신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주인공 존 메이는 타인에게는 무의미해 보이는 서류상의 죽음들을 진심 어린 추도문과 사진 앨범으로 복원해 냅니다. 그는 죽은 자의 단절된 관계를 잇기 위해 발로 뛰며, 그 과정에서 타인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의 닫혀 있던 세상도 조금씩 열어갑니다.
고독사한 빌리의 삶을 되살리는 여정
어느 날 메이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자신의 맞은편 아파트였습니다. 술병이 가득한 고인의 집을 둘러보며 단서를 찾아가던 중, 낡은 앨범 속에서 애틋한 가족 사진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족들을 찾기 위해 다시 회사로 돌아온 그는 새로 부임한 관리자로부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게 되는데, 느린 일처리와 고인들에게 너무 많은 비용을 쓴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허탈함을 느끼던 메이는 빌리의 집에서 가져온 앨범을 다시 펼쳐보는데, 우연히 빌리의 과거 사진 속에서 단서를 발견하게 됩니다.
빌리의 예전 직장에서 동료를 만나게 된 메이는 딸의 사진을 건네받게 됩니다. 딸 켈리의 존재를 모르고 있던 메이는 빌리가 그녀를 만난 경위에 대해 이야기를 듣습니다. 빌리의 옛 연인이 펍에서 음식점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메이는 무작정 거리를 돌아다니며 그녀를 찾아다니기 시작하고, 놀랍게도 그녀는 빌리도 모르게 켈리를 키워왔습니다. 메이는 그녀에게 빌리의 장례식에 참석해 달라 부탁하지만, 빌리에게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던 그녀는 차갑게 거절합니다.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메이는 자신이 장례를 치러준 수많은 고인들을 바라봅니다.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르던 자신과 달리 새로 부임한 직원의 일처리는 너무나 빠르고 간단했습니다. 결국 빌리의 가족을 찾지 못한 채 마지막 날이 되어버린 메이는 빌리의 화장을 부탁하고 미련만 남긴 채 빌리의 사건을 마무리하려던 순간, 상사가 메이를 찾아옵니다. 자신의 신념을 흔드는 상사의 막말을 들은 메이는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기 시작합니다. 빌리의 딸을 반드시 찾겠다 결심하고 과거 빌리가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면회 기록부를 살펴보던 메이는 그토록 찾던 빌리의 딸 켈리의 주소를 알아내게 됩니다.
장례지도사 존 메이가 남긴 가장 아름다운 유산
캘리를 찾아가기 전 메이는 새 앨범을 구입해 낡은 앨범 속 그녀의 사진들을 조심스럽게 옮깁니다. 캘리는 빌리와 멀리 떨어진 외딴 지역의 동물 보호소에서 일하고 있었고, 메이는 그녀와의 첫 만남에 긴장하며 다가갑니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지만 예상외로 무덤덤해 보이는 켈리는 깨끗하게 정리된 앨범을 받아듭니다. 켈리를 사랑했지만 아버지로서 많이 부족했던 빌리는 오랜 시간 알코올 중독과 감옥을 전전하는 모습에 실망한 켈리로부터 관계를 끊임 당했습니다.
겨우 켈리를 찾았지만 빌리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냉정한 답변에 깊이 빠진 채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메이.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던 메이는 켈리가 알려준 빌리의 친구 전보를 찾아갑니다. 전보는 전쟁 중 빌리가 자신을 구해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가 알코올 중독에 빠지게 된 것은 전쟁 후유증 때문이라고 말하며 함께 위스키를 나눕니다. 빌리와 함께 노숙생활을 했던 노숙인들을 만나고, 그들이 기억하는 빌리는 술에 취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메이는 노숙자들을 통해 빌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빌리가 단순히 방탕한 사람이 아닌 많은 상처와 아픔을 지닌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 장례식이지만 메이는 빌리를 위해 좋은 비석과 멋진 관을 준비하고, 햇빛이 잘 드는 자리까지 선택합니다. 고인들과 함께하며 외로움을 견뎌왔지만 빌리의 장례를 끝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메이는 이제 실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무실을 비우던 중 전화 한 통이 울려옵니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켈리였습니다. 켈리는 정성껏 장례를 준비해 준 메이를 보며 고마움과 동시에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생애 처음으로 데이트 신청을 받아본 메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마트에 들러 캘리가 좋아할 만한 커피잔을 구입하고 맞은편 버스를 발견하고 뛰어가던 그때, 길을 건너기 전 늘 신호등을 확인하던 그였지만 생에 처음 느낀 설렘에 너무 들떠 있던 메이는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가장 충격적이면서도 숭고한 지점은 바로 이 역설적인 결말에 있습니다. 평생 타인의 마지막 길을 외롭지 않게 배웅해 온 메이, 그러나 정작 그의 마지막을 배웅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메이의 노력으로 빌리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있었고, 메이의 죽음을 모르고 있는 캘리는 오지 못할 메이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메이의 무덤 앞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지금까지 메이가 정성껏 장례를 치러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영화는 판타지적 연출을 통해 그가 배웅했던 수많은 고인이 영혼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의 곁을 지키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는 "진심으로 대했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며, 선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되돌아온다"는 위대한 위로를 건넵니다.
자신의 죽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거라 생각한 메이, 하지만 메이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그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네 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스틸 라이프》는 홀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장례를 책임지는 존 메이를 통해 고독한 삶과 인간관계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비록 한 사람의 삶이 작고 미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쓸모없는 삶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 빌리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모두의 삶도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의미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스틸 라이프》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삶이란 없다"는 메시지를 존 메이의 절제된 일상을 통해 증명합니다. 우연히 찾아온 설렘 끝에 맞이한 허무한 사고사는 비극적이지만, 그가 남긴 빌리 스토크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존 메이가 세상에 남긴 가장 아름다운 유산이 되었습니다. 2026년 현재, 개인화가 가속화되는 사회 속에서 이 영화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이웃'과 '마지막 배려'에 대해 가장 따뜻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입니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묵직한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는 영화 《스틸 라이프》를 추천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https://www.youtube.com/watch?v=KfRqSl2uP5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