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계의 역사를 다시 쓴 작품입니다. 7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네 친구의 순수했던 우정이 어떻게 비극으로 치닫는지를 그린 이 영화는, 단순한 조직 폭력배 이야기를 넘어 시대의 한계와 개인의 선택이 빚어낸 상실의 서사를 처절하게 담아냅니다.

70년대 부산, 소년들의 순수한 우정
1976년 부산 한누리의 아이들이 소독차를 따라다니며 뛰노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네 명의 소년이 각자의 배경을 지니고 만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건달 두목의 아들 준석은 타고난 싸움 실력으로 학교에서 주목받았고, 일본을 드나들며 밀수업을 하는 어머니를 둔 중호는 넉살과 말발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친구였습니다. 모범생 상택과 장의사의 아들 동수까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네 명의 소년은 우연히 만나 깊은 우정을 쌓아갑니다.
이들의 우정은 계급과 배경을 초월한 순수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장난감 칼을 훔치다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시작된 인연은 극장까지 함께 달리며 웃고 떠들던 시절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이 시기를 통해 우정이란 단순히 함께 있을 때 두려울 게 없는 관계라는 정의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러한 순수함은 동시에 현실의 장벽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예고하기도 합니다. 70년대 부산이라는 시공간적 배경은 단순한 무대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준석과 동수가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선생에게 저항하며 학교를 나가는 장면은, 이미 이들의 운명이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길로 향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상택과 중호가 학교에 남아 평범한 삶을 이어가는 것과 대조적으로, 준석과 동수는 각자의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거부하려 하면서도 결국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비극의 씨앗을 품게 됩니다.
우정의 비극, 진숙과 균열의 시작
고등학생이 된 네 친구 앞에 예쁘고 노래를 잘하는 진숙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모두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지만, 준석과 동수 사이에서 미묘한 감정의 균열이 시작됩니다. 동수는 진숙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준석의 적극적인 행동에 자신이 밀려나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열등감과 배신감을 품게 됩니다. "나는 뭔데, 나는 너 보조원이"라는 동수의 절규는 단순한 질투를 넘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드러냅니다.
상택이 진숙과 데이트를 즐기다 위기에 처했을 때 동수가 등장해 구해주는 장면은, 여전히 친구들 간의 유대가 굳건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극장에서 벌어진 싸움으로 인해 친구들이 징계를 받게 되면서, 각자의 인생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동수는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될까 두려워하며 큰 결심을 하고, 상택은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며 준석을 찾아가 "돈 들고 가출해서 같이 인생 개판 치자"고 제안하지만, 준석은 오히려 상택을 위해 거절합니다.
이 시기는 우정이 개인의 선택과 환경 앞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진숙의 등장은 단순한 로맨스의 시작이 아니라 우정의 균형을 깨뜨리는 촉매제 역할을 합니다. 남성 중심의 서사에서 여성 인물이 갈등의 원인으로 그려지는 것은 다소 전형적이지만, 이 영화는 그보다 깊은 층위에서 동수의 결핍된 자아와 열등감이 어떻게 우정을 잠식해 가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준석이 진숙과 첫 키스를 나누고 사랑의 눈을 뜨는 동안, 동수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며 점차 어둠 속으로 빠져듭니다.
성인이 되어 준석을 찾아온 상택과 중호는, 약에 빠져 폐인이 된 준석과 불행한 삶을 사는 진숙을 마주하며 충격을 받습니다. 이 장면은 순수했던 사랑마저도 현실의 무게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며, 우정의 비극이 이미 회복 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했음을 암시합니다.
숙명과 선택, 돌이킬 수 없는 비극
준석은 결국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건달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동수 역시 학교를 자퇴한 후 조직에 발을 들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조직에 속하게 되면서 숙명적인 대립 구도에 놓이게 됩니다. 준석의 아버지를 배신하고 독립한 상곤의 밑으로 들어간 동수는, 온갖 더러운 방법으로 세력을 키우는 조직의 괴수족이 되어버립니다. 장의사의 아들이라는 숙명을 벗어나려던 동수의 몸부림은, 오히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그를 몰아넣는 결과를 낳습니다.
준석은 친구였던 동수를 작업할 수 없어 부하들을 만류하지만, 상곤파가 건달의 불문율을 어기며 준석의 조직을 건드리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됩니다. 친구이자 부하인 돌코가 동수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준석은 홀로 동수를 찾아가 마지막 대화를 나눕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됐어도 나는 널 한 번도 원망 안 했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놈들이야"라는 준석의 말은,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선택보다 숙명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순간입니다.
준석은 동수에게 "하와이로 가라"며 탈출을 권유하지만, 동수는 "네가 가라"라고 답합니다. 이 상징적인 대사는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른 두 사람의 운명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고심 끝에 무언가를 결정한 준석과, 그의 진심을 뒤늦게 깨닫고 친구들에게 돌아가려던 동수, 하지만 모든 것은 이미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결국 준석은 동수에 대한 죄책감에 무너지고, 조직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죄를 인정합니다. 동수의 아버지는 끝까지 준석을 신뢰하며 "너도 어차피 자식 같은 놈"이라고 말하고, 증오는 어떻게든 준석을 살려보려 노력하지만, 준석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면회 장면에서 준석과 상택이 나누는 대화는 비극의 정점을 찍습니다. "우리 보조원였다"는 준석의 말은, 모든 것이 결국 선택이 아닌 숙명이었음을 인정하는 씁쓸한 고백입니다.
영화는 어린 시절 극장까지 함께 달리던 네 친구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마지막으로 비추며 막을 내립니다. 이 대비는 "친구는 함께 있을 때 두려울 게 없는 존재"라던 정의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환상이었는지를 증명하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상실의 서사로서 <친구>는 단순히 조직 폭력배의 흥망성쇠를 그린 것이 아니라, 시대의 파도와 개인의 선택 속에서 무너진 우정의 비극을 처절하게 담아낸 수작입니다.
영화 <친구>는 70년대 부산이라는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네 친구의 우정이 어떻게 비극으로 치닫는지를 보여주며, 숙명과 선택이라는 피할 수 없는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룹니다. "니가 가라 하와이", "내가 니 보조원이" 같은 상징적 대사들은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한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며, 이 영화가 왜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지를 증명합니다.
[출처]
영상 제목/채널명: 위클리 무비 / https://www.youtube.com/watch?v=3gcyZq23teg